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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 샬롯 코튼, "권부문 사진에 관한 단상들의 성좌", 2013
DATE : 02/24/2014 17:14

<권부문, 성좌>, 대구미술관, 2013

 



권부문 사진에 관한 단상들의 성좌

 

샬롯 코튼 (평론가, 전시기획자, 뉴욕 파슨스 디자인학교 및 캘리포니아 예술학교 CCA 초빙 교수)

 

「성좌」전은 지난 15년에 걸친 권부문의 사진작업을 보여준다. 그의 주요 작품들을 세심하게 추려 집대성한 이번 전시는 새로운 눈으로 그의 작품을 바라보는 경험을 선사한다. 이번 전시를 통해 작가는 주로 1990년대 후반부터 발표한 사진과 비디오 작품을 배열하고 서로 연결하여 만든 물리적, 정신적 세계로 우리를 인도한다. 과거 나는 권부문의 여러 연작 작업에서 피사체를 포착하는 무궁무진한 가능성 중 최고의 시점을 절묘하게 포착하는 그의 방식을 높이 평가했었다. 각각의 연작에서마다 권부문은 사진적 탐구의 여정과 끊임없이 진화해온 예술적 요구의 크나큰 의미를 만들어 왔다. 그의 작품 세계를 정교하고 균형있게 조망한 이번 전시회의 도록과 전시를 통하여 우리는 권부문의 작업이 자연과 우주의 경이로운 힘에 대한 작가의 탐색과 경험이 모여 그리는 성좌라는 것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사려 깊게 엄선한 작품들로 구성한 이번 전시에 붙여진 「성좌」라는 제목은 전시를 여는 밤하늘에 관한 작품을 직설적으로 지칭할 뿐 아니라 권부문의 작업 중에서 독립된 그룹을 형성할 수 있는 일련의 작품을 모았다는 점에서 적절하다고 하겠다. 성좌라는 단어는 작품들이 서로 연관 관계 속에서 만들어내는 생각과 신호들을 놓치지 않도록 관객을 초대한다. 그것은 그 자체로 작품과 동등하게 의미 있고, 유관한 시각적 고안들의 집합이다. 「성좌」 전시 전체에 흐르는 세 가지 발상이 있는데 여기에서 좀 더 상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겠다. 권부문은 우리의 상상력에 다각적으로 작용하는 작품을 보여주며, 특히 그의 작업은 사진적, 즉물적, 철학적으로 파악될 필요가 있다.

 

권부문의 사진작업은 본질주의적이다. 방법론에서뿐 아니라 관객의 경험을 사진의 속성, 사진이 피사체의 겉모습에 관해 드러낼 수 있는 어떤 것으로 상정하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정확한 사진적 지점에서 만들어지는 그의 작품은 사진이 가시적인 대상에 대한 탁월한 시점이라는 견고한 생각, 사진가의 역할은 가장 분명하고 의미있는 그 관점을 찾아내는 것이라는 생각을 담고 있다. 사진작가란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고 거기에 반응할 수 있는 그 지점으로 인도하는 안내자라는 생각이 그의 작품마다 들어있는 것이다. 이러한 본질주의적 사진 개념은 권부문이 바다와 화산 풍경, 빙하가 드러나는 자연계를 대상으로 선택함으로써 증폭되는데 그들은 원소나 구성 차원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심원한 상태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권부문의 사진적 내러티브는 인간의 눈으로 인지하기에는 너무 느리거나 혹은 너무 빠른, 하지만 사진으로는 기록 가능한 시간의 변화를 사진적 관점으로 만들어내는 놀라운 가능성들로 요약될 수 있다.

 

권부문의 사진을 실제로 보는 것은 단순히 관객과 각 사진의 탁월한 시점과의 관계 설정에서뿐 아니라 작가가 고안한 전시장 설치를 경험한다는 의미가 있다. 작가는 지난 15년 동안 다양한 회화적 고안을 사용하여 자연에 대한 인간적이고 감정이입적인 만남에서부터 그러한 확신을 의식적으로 교란시키는 무방향성, 거의 비인간적 관점들을 작업해 왔다. 일부 사진에서 그는 수직 화면으로 그 앞에 선 관객이 분명하게 비서구적 방식으로 상단부터 죽 훑어서 현재와 근경에 해당하는 하단을 보도록 한다. 동시에 수평적 파노라마에서는 좌에서 우로 펼쳐진다기 보다는 과밀한 전경과 낮은 지평선으로 단축된 공간묘사의 내러티브가 있다.

 

그의 작품에서 우리는 광활하고 통제할 수 없으며 이미지의 명료함에도 불구하고 알 수 없는 자연의 힘에 직면함을 느끼게 된다. 「성좌」에 전시되는 작품보다 더 이전에 나타난 권부문만의 고유한 형식적 장치는 아마도 사진 화면 중앙을 가로지르는 압도적인 그래픽적 수평선의 사용일 것이다. 이러한 장치는 이번에 전시되는 하늘 풍경 연작인「구름 위에서」와 바다 풍경「낙산」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는데, 사진 프레임 안에서 공간이 압축적으로 통제된 것을 보여준다. 이들 작품 앞에서 관객은 자동적으로 권부문의 카메라 위치를 받아들이고 거기에 동화하게 된다.

 

관객을 체험 공간으로 이끌어 장대한 풍광과 그 속의 질서에 대한 절묘한 시점을 경험하도록 하는 권부문의 역량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주목할 것은 그의 카메라적 관점이 인간적 스케일이나 인간적 시각을 재현하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는 점이다. 그는 세상에 대해 전지적이지만 여전히 인간적인 시각 탐구의 감각을 보여주는 사진작가의 범주를 넘어선다. 사진 특유의 과장된 스타일을 철저히 회피한다는 점은 그의 사진을 바라보는 관객이 그의 작가성에 압도되지 않고 카메라가 탐색한 자연 현상 속으로 자유롭게 들어갈 수도, 넘나들거나 초월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성좌」전을 체험하는 것은 지난 15년에 걸친 권부문의 사진적 탐구를 일목요연하게 보는 것에서뿐 아니라 전시공간 속의 작품 배치를 통해서도 이뤄진다. 권부문이 작품과 작품 선정에서 보여주는 완벽한 절제는 이번 전시의 중요한 경험 그 자체이다. 그는 꼭 필요한 숫자만큼의 작품과 시퀀스를 보여줌으로써 이번 전시와 책이 구성하는 일차적인성좌와 관객의 관계를 「성좌」전을 관통하는 역동적인 밀물과 썰물로 설정하며 특별하게 다루고 있다.

 

「성좌」전은 세계의 다양한 장소에서 촬영한 밤하늘 사진을 담은 서른두 개의 비디오 동영상 설치 「별보기 2013」으로 막을 연다. 이 작품은 관객이 실제적이고 심리적으로 전시 컨셉 안에 들어가도록 하며, 즉시 감동적이고 시각적인 여행을 할 수 있도록 감응시킨다. 「성좌」전시가 빛나는 LED 스크린의 밤하늘로 밝혀진 어두운 공간에서 시작하며, 밤에서 낮으로 전시가 진행된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첫 번째 방의 한쪽 벽에는 권부문이 1990년대 후반에 제작한 「속초에서 별보기」 연작 중 세 점이 전시되어 있다. 액자된 세 사진은 강원도 속초의 밤하늘과 나무의 상단 부분을 담고 있다. 밤하늘의 빛은 구름과 그 아래 도시의 빛과 어우러져 복잡한 형상을 띈다. 이 작품들은 「성좌」전의 첫 번째 방의 주제에 걸맞은 놀랄 만큼 아름다운 이미지들이다. 또 전시 서두에 던지는, 권부문 예술을 총괄하는 내러티브에 대한 중요한 발언이기도 하다.

 

권부문은 자연계를 체험하도록 만들어진 전시로 우리를 인도하며, 자연계에서의 경계는 사진적으로 보여지지만, 그가 포착한 오래된 장소, 하늘, 절묘한 시점 위에 겹쳐진 근현대적 경계 또한 암시되어 있다. 첫 번째 방의 세 작품의 배경이 된 속초는 1945년부터 1953년까지 북한 영토였으나, 지금은 설악산 국립공원으로 들어가는 진입구이다. 분명히 존재하나 겉으로 뚜렷이 드러나지 않는 남북한 간의 접경지점의 존재는 이번 전시의 두 번째 방에 그대로 옮겨져 있다. 이 전시실의 여섯 작품 중 세 점은 강원도 오대산의 울창한 숲을 배경으로 한 「오대산」(2009-2013) 연작 중 일부이다. 강원도는 권부문이 2001년부터 거주하고 있는 지역으로 「산수」 연작의 모티브를 제공했다. 그는 의식적으로 정치적 역사와 개인적 경험 그리고 지리적 시간 간의 시각적 모순을 경이로운 풍경사진 속에 펼쳐놓았다. 시간이라는 개념은 다양한 층위로 작동한다.「오대산」 사진을 마주한 우리는 작품 속 땅 위에 두껍게 쌓인 나뭇잎 사이를 소요하며 인간적 스케일의 시간 개념에 빨려 들어가게 된다. 이 작품 속 자연의 시간은 특히 복잡한 양상으로 표현되는데, 고속으로 변화하고 성장하는, 사진은 그 성장의 찰라만을 기록할 수 있는 식물의 뒤얽힘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그러나 권부문의 사진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 상태를 영속적이고 오래된 이미지로 제시한다. 이러한 틀 안에서 명확하고 고정된 국경이라는 개념은 풍경의 인간적, 생물적 현실과 충돌을 일으키며, 장소에 대한 가장 의미 없는 정의가 되어버린다.

 

「산수」 역시 한겨울의 설악산 국립공원 정경을 매우 생생하고 세밀하게 표현한다. 「산수」 의 첫번째 방에는 이전 전시실에 있는 봄철의 숲에서 보여준 탁월한 시점으로 포착한 앙상한 겨울 나뭇가지나 줄기들의 이미지가 있다. 이어서 「산수」 의 두번째 방은 강원도 산악의 수직적 웅장함과 수평적 광활함을 극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지점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이 풍경들은 숲 속의 눈 덮인 땅을 배경으로 서 있는 검고 헐벗은 나무 위로 자욱하게 흩날리는 눈송이 때문에 실제로 어른거리는 효과를 낸다. 우리는 이들 사진이 보여주는 정밀함과 웅장함을 파악하느라 분주해지지만 이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사진은 스케일을 묘사하지 않는다. 이러한 특성은 인간의 시각으로 포착하거나 심지어 제대로 인식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정도의 세밀함과 광활함을 담아낸 사진의 마술같은 성격을 유지시키는 한부분인 것이다.

 

「성좌」의 관람 순서는 묵상적인 상태를 유지하도록 세심하게 구성되어 있다. 다음 전시실로 옮겨가서 「구름 위에서」를 감상해보자. 이 작품은 지구의 새파란 성층권에 펼쳐진 융단 같이 두터운 구름 위를 나는 비행 여정 중 촬영된 것으로 눈부시게 아름다운 아홉 점의 추상 사진을 한 시퀀스에 담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곡면 구조물 안에 설치되어 보여진다. 각 전시실에서 작품들을 면밀히 바라본 사람만이 이 시각적 작품이 선사하는 높은 수준의 정신적 집중 상태를 제대로 음미할 수 있다. 비유적으로 표현하자면 밤에서 빠져 나와 낮을 겪은 후, 산을 오르고 계절을 통과하고 나서 비로소 「구름 위에서」의 드높은 수평선에 도달해 모든 것이 눈 앞에 펼쳐지는 것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성좌」의 여섯 번째 방에서 우리는 권부문의 흑백 사진과 그가 아끼는 장소로 돌아가게 된다. 수평적인 사진 세 점과 수직적인 사진 네 점은 낙산 해안과 동해 바다, 융단 같은 눈으로 뒤덮인 해변을 촬영한 작품으로 작품의 하반부가 한결같이 텅 빈 평면이다. 병산의 어느 한 지점에서 찍은 최신작 「병산」 연작 세 점은 눈보라의 태동을 담고 있다. 이 전시실에서도 작가가 지금까지 우리를 위해 구축한 면밀한 시선이 계속 이어지지만 권부문은 여기에 새로운 측면을 더한다. 바로 상상 속의 소리를 작동시키는 것이다. 눈보라가 시작되면 파도가 철썩거리고, 눈발이 켜켜이 쌓이며, 대지는 우르릉거린다. 이러한 풍경의 유동성이 야기하는 청각적 자극 때문에 우리는 자연의 무자비하며 탈인간적인 성격에도 불구하고 이 풍경 속에서 감각적으로 머물게 된다.

 

러한 유동적 풍경에 에워쌓이는 체험을 한 후, 우리는 「성좌」의 일곱 번째 방에서 우리를 사로잡는 견고하고 고립된 돌들과 교감할 준비를 하게 된다. 권부문은 주로 2007년과 2008년에 기존의 작업 방식을 벗어나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의 외딴 풍경을 촬영했다. 이 작품들은 그가 북방풍경에서도 사진적, 물리적, 지리적인 요소를 끄집어 내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한국에서 계속해서 진행 중인 작품들에서와 마찬가지로 관객들에게 명상적, 은유적 체험을 제공한다. 이 일곱 번째 방에 전시된 사진 속 돌들은 기이하게도 조각적이며 차분한 형태를 띤다. 돌은 사진 프레임의 중앙에 놓여 있어서 마치 토템이나 초자연적 풍경을 지키는 수호자처럼 보인다. 이들의 견고함은 「성좌」의 마지막 방에 전시된 여덟 점의 수직 이미지가 담고 있는 외딴 극지의 느낌과 대조를 이룬다. 그린랜드 빙하 계곡의 파노라마식 전경과 아이슬랜드의 검은 화산 모래 해변에 옅은 푸른색 유빙들이 흩어져 있는 사진들이다. 이 장소들는 놀랍도록 아름답고 우아하며 인간의 인지가 미치지 못하는 시공간을 체험할 수 있는 육감적이며 동시에 심리적인 공간으로 유도되는 특별한 감정을 갖게 한다.

 

성좌라는 개념을 통해 권부문은 관객이 그의 경이로운 사진 작업의 모티브와 그 작업들을 운영하는내러티브를 직접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 ‘성좌라는 개념은 또한 작가가 우리 앞에 펼쳐 보이는 육감적이고도 철학적인 여정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번 전시 전체에 녹아있다. 우리는 하나의 연작을 다른 작품들과의 연관성 속에서 이해하게 되고, 각 방을 이어주는 상호 연관된 감상을 통해 권부문 사진의 심오한 의미를 더 깊이 인지하게 된다. 그가 제시하는 탁월한 시점을 통해서 우리는 심오하면서 탈인간적인 시간과 변화, 그리고 시각에 관하여 우리의 이해를 담금질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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